“으으. 여긴 어디지?”
“이제 정신이 들어?”
“에?
라비가 노곤한 얼굴을 한 채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불현듯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으왓! 네가 왜 여기에?”
라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 움직임을 따라 푹신한 침대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거 참 아침 인사 한번 격렬하네.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막 흔들어도 안 일어나더라.”
“그러고 보니… 술을 마셨던 거 까진 기억나는데.”
라비는 기억을 곱씹어보듯 눈을 감고선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설마?”
“그런 거 아냐.”
대회 전이랑 전혀 다를 바 없이 호들갑 떠는 그 모습이 되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거짓말 아냐?”
“그냥 너 혼자 정신을 못 차려서 여기로 옮긴 거뿐이야.”
“으으. 나 진짜 왜 이러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라비의 모습에, 나는 그녀의 기도 펴줄 겸 가볍게 등을 툭툭 쳐 줬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래도….”
최근 그녀는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결승 날 이후로 부쩍 나와의 거리감이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만, 종종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토라져버리면 참 대화하기가 곤란하단 말이지.
처음에도 술을 주체 못 하고 마시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걷는 것도 힘들어한 탓에 비장의 수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걷질 못해서 업고 데려왔는데. 정말로 기억 안 나?”
“으음. 그랬던가? 가물가물해.”
“그때 네가 너무 무거워서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고?”
흔한 거짓말이다.
오히려 가벼우면 가벼웠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워낙 가벼워서 그대로 침대 위로 던져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뭐? 너 진짜 말 다했어?”
라비는 내 말에 도리어 발끈하며 가벼운 화를 냈다.
그렇지만 전혀 화난 거 같지 않고 오히려 귀엽다고 해야 하나.
“말 다했으니까 앞으론 몸 간수 잘해.”
“끄응. 알았어.”
뭐, 방금 말로 라비가 어떻게든 울적한 기분을 떨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가능하면 그녀가 겪었던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어라. 그러고 보니, 아이라 언니는 어디 갔지?”
라비가 잠이 완전히 달아난 건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아이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어느샌가 호칭이 되게 편해진 모양이네.
아이라가 아직도 격식을 차리는 것과 달리, 라비는 친화력 좋은 후배처럼 벌써 말을 다 터놓고 있었다.
“아이라라면 일찍 일어나서 산책 갔다 온다고 했을 거야.”
“그래? 엄청 성실하네…”
아이라는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숙취도 없는 건지 나보다 더 눈에 총기가 가득했다.
그 성실함이 있었기에 아이라가 그만큼 강한 거겠지.
“이렇게 방 안에 있었던 게, 대회 준비 전이던가.”
“맞아.”
대회 직전부터 시작된 라비와의 인연, 항상 고양이 자세로 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네가 자는 모습을 아이라가 봤어야 했는데.”
“갑자기? 어째서요?”
“고양이 같거든.”
“…?”
라비는 어째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싶었지만, 나는 어젯밤에 아이라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하여간에,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추억이네.”
“그러게. 그때도 참 신세 많이 졌지.”
“그걸 아는 녀석이 또 그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