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 리그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전보다 좀 더 강한 힘을 얻은 상태였으니, 이제는 조의 그 누구도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욱 커진 점수 차이와 함께, 조 1위를 끝까지 유지한 채 조별 리그가 종료되었다.
[조별 리그가 종료되었습니다. 각 조의 점수 상위 2명이 토너먼트에 진출합니다.]
‘어디 보자. 다른 참가자들은….’
조별 리그를 끝낸 나는 다른 조의 결과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부분은 당연하게도 아이라와 라비의 결과. 그 둘은 내가 대회에서 몇 안되게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예상대로 둘 다 조 1위를 달성한 상태였다. 조 2위였어도 진출은 했겠지만 그래도 이변이 하나 정돈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 이후에 다른 조의 결과도 확인해봤는데, 확실히 이쯤 되니 쟁쟁한 참가자들만 남아 있었다. 조 1, 2위 모두 상당한 실력자들로 구성이 된 상태.
‘그럼, 이제 마지막 단계인가.’
대회는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 단계인 토너먼트를 앞두고 있었다. 16강 토너먼트, PVP에서 지면 그 즉시 탈락. 참으로 심플한 규칙이라 볼 수 있다.
던전 탐사가 테마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끝이 서로 간의 대결이냐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꽤 유구한 전통이었다.
던전 탐사를 하다 보면 인간형 몬스터와 싸울 때도 많고, 때론 서로의 견제를 위해 파티 간에 영역 다툼을 벌이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탐험가가 무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최고의 던전 탐험가는 곧 최강의 싸움꾼인 셈이다. 최고의 탐험가를 가리는 대회인 만큼 전투 능력이 가장 중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대회의 끝이 토너먼트 형식인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마지막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무렵, 이젠 익숙해진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이전과 비슷하게 장소를 옮기려는 모양.
나를 향해 모여드는 빛무리를 가만히 받아들이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리고 눈앞까지 드리웠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6명의 참가자가 모두 한 공간에 있었다.
“오 역시! 믿고 있었어!”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당연하게도 그중에는 라비와 아이라도 있었다.
하긴, 사람이 16명 밖에 없으니 이제는 억지로 찾아보지 않아도 누가 누군지 대충 알아볼 만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괜히 반가운 기분이네.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아이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조별 리그는 다들 어떠셨나요?”
“이번에? 나름 할만했는데? 던전 탐사야 늘 하던 거니까.”
“무난했어.”
“그런가요…? 제겐 쉽지 않았던 시간이어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아이라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번 조별 리그를 치르는 데 상당히 고생한 모양인데.
그러고 보면 아이라는 던전 탐사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던전처럼 어두침침한 곳보다는 더 품격 있는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이번 대회 전까지는 던전 탐험에 관해 그녀의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다. 우승 후보라 불리는 것도 대회가 열리는 곳까지 오고 나서야 알았던 거고.
그 추측을 증명하듯,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사실 던전과는 그리 큰 인연이 있지는 않아서…. 탐사 자체를 별로 못해 봤어요. 그래서 던전을 둘러보는 거 자체가 좀 어렵더라고요.”
“그런 거라면 대회 참가 자체가 어렵지 않아?”
“그렇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는 이번 대회를 꼭 우승하고 싶었거든요. 이건 진심이에요.”
아이라 또한 라비와 비슷하게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다만 라비의 감정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면, 아이라는 그 속이 맑고 깨끗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라를 향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건 라비도 마찬가지인 모양인지 지금 대화에 끼어들었다.
“던전 탐사를 별로 안 해봤다기엔 막 우승 후보라 불리던데, 심지어 이번에 조 1위도 했잖아.”
“그건 제가 던전 탐험가가 되기 전에…. 어라? 두 분 모두 저에 대해 알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아니? 처음 보는데?”
“글쎄, 잘 모르겠군.”
나나 라비나 아이라에 대해선 도통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기라도 한 건지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가요? 신기하네요. 어지간해선 다들 저를 알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던전 탐사만 하다 보니 바깥소식은 잘 몰라서 말이지.”
“나도! 나도 그래!”
던전이 폐쇄된 공간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안에만 있다 보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렵다. 아이라는 그 말을 듣고선 뭔가 깨달은 듯 살짝 웃어 보였다.
“아…. 그렇게 된 거군요.”
“뭐야? 왜 웃어?”
“아뇨, 그냥. 두 분을 만난 지금 상황이 재밌어서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이라의 내면에는 순수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한층 편안해진 분위기를 내비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예전에는 모험을 주로 다녔는데, 최근에는 던전 탐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러다 이번 대회까지 온 거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아이라의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던전 탐험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된 걸까?
그런 의문이 불현듯 들었지만, 그걸 묻기도 전에 라비가 먼저 선수를 쳤다.
“탐사가 서투르면 이번이 고비긴 했겠네.”
“맞아요. 근데 탐사 대신 다른 플레이어를 계속 방해하는 걸로 목표를 바꾸니 1위가 되긴 하더라고요.”
“호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탐색 대신 전투로 조 1위를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물론 그러기 위해선 압도적으로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겠지.
새삼 아이라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라비쪽 그룹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면 라비 너는 이번 조별 리그 때 어떻게 했어?”
“나? 나야 뭐 정석대로 진행했지, 적당히 견제하면서 탐사 위주로.”
경험이 많은 라비는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략을 세운 모양이다. 그러면서 라비는 여전히 눈을 초롱초롱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말이야. 나 저기서 신기한 걸 발견했다? 이거 한번 봐볼래?”
라비는 그렇게 말하고선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어딘가 낯익었다.
푸른 보석.
내가 가진 붉은 보석과는 달랐지만 어째서인지 거기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다.
“신기하지 않아? 아직도 던전 안에 발견 못한 물건이 있단 거잖아!”
“그거, 비슷한 걸 나도 가지고 있어.”
그러면서 줄곧 가지고 있던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라비는 깜짝 놀랄 표정이었다.
“뭐야! 너도 가지고 있네? 어디서 발견한 거야?”
“탐사를 위해 마련된 장소 안에 샛길이 있더군. 그 길 끝의 보물상자에서 발견했어.”
“진짜? 나도 비슷한 데서 찾았는데. 우연의 일치인가?”
라비와 이야기를 나눠보는데 어째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던전 안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공간이 있으며 거기서 보석을 주운 것.
수상할 정도로 똑같다. 어째서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별로 좋지 못한 신호인 건 확실했다.
완전히 공략된 던전이라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숨겨진 보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했다. 던전 공략도 사람이 하는 거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째 걱정되는군.’
대회에만 큰 지장이 없다면 괜찮을 텐데, 어딘가 불안한 부분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뭔가 표정이 진지하네.”
“아무래도 미공략된 부분이 남아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
“뭐, 가끔 있는 일이잖아? 별일 없지 않을까?”
라비는 지금 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뭐, 참가자 입장에서 대회 운영을 논하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렇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 예선 당시 방송이 원활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불안 요소가 한둘이 아닌 것 같단 말이죠.”
아이라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 말대로 지금 대회에는 위험 요소가 남아있었다.
만약 단순히 보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숨겨진 몬스터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확률은 낮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최악의 경우엔 대회를 중단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라비에게 전하니, 그녀는 어째선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에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멀티플레이 마법 때문에 목숨엔 지장이 없지 않아?”
“글쎄.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아. 라비 네가 보석을 찾았을 때 뭔가 느낀 게 없어?”
“음. 그떄 약간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멀티플레이 마법과 관련이 있는 거 같아.”
여전히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때 겪은 현상은 자신의 걸린 마법 효과가 약해지는 신호와 비슷했다. 던전 탐사를 하다 보면 가끔 겪을 수 있는 일이지.
만약 그때 약해진 마법이 멀티플레이 마법이라면… 그때는 이곳이 단순한 대회가 아닌, 목숨이 걸린 진짜 던전 탐험이 될지도 모르는 거였다.
“정말 그런 거라면 위험하겠네.”
라비도 거기에 나름대로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말이야. 이제 마지막 단계까지 남은 이상 이제는 포기하기도 어려워. 여기서 대회를 끝내기엔 너무 아쉽거든.”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그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게. 적어도 지금은 어쩔 수가 없을 거 같네. 당장은 토너먼트에 집중해보자고.”
나는 그렇게 답하며 대진표를 확인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여전히 대회가 진행 중인 만큼 거기에도 집중해야 했으니.
나와 아이라, 라비는 대진표상으로 꽤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적어도 4강이 되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을 위치, 어떻게 보면 조 1위의 특권이기도 했다.
“이러면 한동안 또 만날 일이 없겠네.”
“만약 저희 셋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4강에서는 저와 붙을 상대는.”
“나군.”
4강까지 올라간다면 4명 중에 3명이니 필연적으로 우리 셋도 경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대진표상으로 만나는 건, 나와 아이라.
내 입장에선 다소 걱정되는 만남이었다.
“만약 정말로 대진이 성사된다면, 좋은 승부가 되겠네.”
“맞아요. 결코 봐주는 일은 없을 테니 각오하라고요?”
아이라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음 마법사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따스한 면이 있다니까.
“그럼 나랑은 결승에서 붙겠네.”
“결승까지 갈 순 있고?”
“에? 날 뭐로 보고!”
라비는 정 반대편 쪽에 편성이 된 만큼 결승이 되어야 겨우 만날 법했다. 그녀의 실력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오히려 이쪽에 쟁쟁한 경쟁자가 많은 기분인데. 자칫하단 4강에 가기도 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이번에 16강에서 만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뭐 라비와 아이라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상대가 누가 되었건, 언제나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잠시 후 토너먼트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운명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 울림을 들으니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제부턴 지면 바로 탈락이야.’
그전까지는 안전장치가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진검승부. 지는 순간 대회는 끝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누가 되었건 간에 최선을 다해야겠지.
빛무리가 모여들고 참가자들은 거기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마법 장치의 힘으로 각자의 장소로 이동했다.
토너먼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