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전

빛이 사그라들고 시야가 돌아왔을 때. 익숙한 던전의 모습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거기엔 의외로 낯설지 않은 이가 있었다.

“히익!”

창을 들고 서 있는 그는 어째 벌써 겁먹은 모습이었는데, 저번에 한 번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그렇게 고민하며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오히려 반대편에서 거리를 벌리며 낮게 읆조렸다.

“…괴물.”

그리고 그 말을 들으니 좀 더 선명히 기억이 났다. 예선 2라운드였나, 그때 우연히 만났다가 인사하기도 전에 사라졌던가.

그때 이후로 얼굴을 통 보지 못해서 도중에 탈락한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생존해 있던 모양이다.

“조 2위로 겨우 올라왔는데 하필 상대가.”

“예선 때 봤던 분, 맞나요?”

“…네.”

대회 규정상 16강 상대는 조 1위와 조 2위 간의 싸움이었다. 그만큼 전력 차가 상당히 많이 차이 나는 상태로 시작하게 되지.

그렇지만 아무리 조 2위라 한들 여전히 방심할 순 없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이곳 본선까지 진출한 이상 어떤 이변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

‘후우.’

나는 가만히 심호흡했다. 상대방은 여전히 겁먹은 채였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자세를 취했다.

“으… 자신 없지만, 그래도.”

기세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그 속에 담긴 열의만큼은 나와 같았다.

[곧 16강이 시작됩니다. 상대를 먼저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참가자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참으로도 간단한 규칙 아래서. 나는 검을 고쳐 쥐었다. 상대방의 무기는 창인 만큼 첫 공격을 특히 주의해야 할 터.

[경기 시작합니다!]

파앗!

신호음과 함께 나와 상대방은 동시에 전방으로 쏘아졌다. 예상대로 상대의 창은 나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그 흐름에 맞춰 살짝 몸을 돌려 치명상을 피한다. 곧이어 검을 쥐고 있던 손을 창대를 따라 휘두른다. 창 너머의 상대방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는 검격.

상대방도 그걸 눈치챈 건지 재빠르게 몸을 내빼려 했다. 하지만 관성 탓에 완벽히 공격을 피하지는 못하는 상황. 손등에 약간의 상처를 남긴 채 첫 합을 마무리 짓는다.

“으….”

그렇지만 쉴 틈 따윈 없었으니, 나는 끝없이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갔다. 재빠른 검격을 상대는 어떻게든 창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기본기의 차이가 여실했다.

채앵ㅡ

금속이 맞부딪힌다. 청명한 소리가 끝없이 귓가를 울려댈 무렵, 상대는 어느새 궁지에 몰려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아직이야….”

나는 더 공세를 몰아붙이고 싶었지만, 상대도 내 공격 패턴을 눈치챈 것인지 생각 이상으로 방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얇은 상처가 계속 피부에 새겨졌음에도 치명상만큼은 내주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계속 공격하는 것도 점차 힘에 부쳤다. 분명 끝없이 공세를 이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창 하나로 용케도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상황.

‘의외로 만만치 않은 상대군.’

여러모로 답답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나는 잠시 공격을 멈추고 태세를 전환했다. 숨을 돌릴 겸 상대의 공격을 받아치는 게 좀 더 효율적일 것 같았기에.

잠깐의 공백이 생긴 사이 상대는 전열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차례가 됨을 직감 한 것인지 창을 들어 올리는 대신 다시 나를 향해 겨누었다.

잠깐 숨 한번 돌리는 사이에 상대는 바람처럼 가볍게 내 쪽으로 쇄도했다. 서둘러 검을 들어 올려 방어를 해내지만, 그 충격까지 온전히 막아내긴 어려웠다.

찌르르-

손을 타고 흐르는 진동이 느껴진다. 어설프지만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창격을 차근차근 막아내는 동시에 반격 타이밍을 노리는 상황.

그렇지만 상대방의 체력이 생각 이상이었다. 마치 무한한 체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지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왔다. 기본기 차이 때문에 유효타는 없었지만, 이렇게 막기만 하는 것도 썩 좋지는 않은 상황.

중간중간 반격을 해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선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계속 뒤로 밀리는 건 좀 곤란한데.

나와는 달리 상대방은 지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여줬던 태도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가히 당황스러울 정도. 그런데,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히 익숙했다.

‘보랏빛 기운?’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던 전투 전과 달리, 지금은 몸을 은은한 보라색 빛으로 감싼 채로 끝없이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이 느낌, 분명 저번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보석….’

상대에게서 보석의 기운이 느껴졌다. 붉은 보석, 푸른 보석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기운. 그래, 나와 라비가 보석을 얻었다는 건, 다른 참가자들도 보석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단 거겠지.

거기까진 미쳐 상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공세가 생각보다 당황스러웠다. 그 사이 전선이 더 밀리더니, 이젠 더 물러날 곳 없는 벽 끝까지 밀렸다.

“여기까지다!”

창끝이 심장을 노린다. 지금까진 후퇴하면서 공격을 막았지만, 지금은 등과 벽이 맞닿아버린 상황. 공격을 피할 공간이 부족했다.

‘이러면 어쩔 수 없겠군.’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던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된 이상 나도 그에 맞춰 대응할 수밖에 없지.

그사이 나를 향해 빠르게 쏘아진 창은, 공기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벽에 닿았다.

“…어라?”

순간 상대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 눈앞에 있던 적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

그가 창을 찌른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를 향해 조용히 읆조렸다.

“생각 외네요. 금방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갈 곳을 잃은 상대방의 등 뒤에서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그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에요.”

나는 그대로 들고 있던 검을 훤히 보이는 등 위로 내리꽂았고, 그걸 끝으로 경기는 종료되었다.

[경기가 종료됩니다.]

시합이 끝나자 멀티플레이 마법이 발동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빛무리가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상대방이 침음을 흘리며 단말마를 내뱉었다.

“방금 그건….”

“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죠.”

보석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상대라면, 나도 똑같이 상대하면 되는 법.

조금 전, 나는 붉은 기운을 몸에 두른 채 창을 순간 이동을 하듯 빠르게 피해냈다. 아마 상대도 이런 느낌으로 보석의 힘을 끌어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보석이 없었어도 여전히 이길 자신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더 고전했겠지.

그러는 사이 상대는 빛에 휩싸여 이곳을 떠났다. 내 대답을 듣기는 했을까? 뭐, 어떻게 되었건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어떻게 잘 넘길 수 있었다.

‘보석이 생각 이상의 변수군… 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상대방이 멀티플레이 마법에 의해 사라진 그곳에, 익숙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보랏빛을 뿜어내는 영롱한 보석.

‘…어째서?’

그걸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멀티플레이 마법에 따르면, 분명 처음에 던전에 들어올 때 상태 그대로 돌려보낼 텐데…?

‘설마.’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니 한가지 추측되는 부분이 있었다. 보석은 던전에 들어온 이후에 얻은 물건이니…. ‘처음 상태’에 해당하지 않으니 그대로 여기 남은 게 아닐까.

보석이 대회 측이 의도한 보물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심히 보석을 향해 손을 갖다 댔다. 그러자 붉은 보석을 주웠을 때와 같은 기운을 느꼈다.

‘이건….’

어째 이 보석이 있으면 무한한 체력을 가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뭐 말이 그렇단 거고 실제론 체력을 일부 올려주는 역할이겠지만.

엄청나게 큰 효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정도는 아닌 힘, 그리고 이건 방금의 붉은 보석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제한이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순간 이동하듯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이득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동시에, 어째선지 이 힘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처음 대회에 들어왔을 때의 순수한 실력으로 진검승부를 해보고 싶달까. 내 작은 변덕이었다.

‘뭔가 사기 치는 기분이랄까.’

전에 말했듯 이번 대회는 아티팩트와 같은 보조 도구를 활용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이곳에 올 때 다른 보조 도구 없이 오로지 검과 방어구만 갖춘 채 들어왔었다.

도구에 의존하다 보면 자신의 단련에 소홀해질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지.

그리고 방금 보석의 힘을 사용해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이 힘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스스로 실력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본능적 감각의 영역. 보석이 더 생기긴 했지만 지금 이후로는 가능한 이 보석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는 8강이었기 때문에 보석의 힘을 안 쓰다가 져버릴 수도 있긴 한데, 뭐 그렇게 되면 내가 부족했단 거겠지.

우웅-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8강으로 향하는 빛무리가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나는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빛에 몸을 맡겼다.

여전히 보석의 존재가 신경 쓰였지만, 아직 대회는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 상대가 누굴지 기대되었다. 쉬운 상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내 시야는 빛으로 가득 찼다.

8강을 치르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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