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한 번에 적을 쓰러트린 아이라는 나를 보고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앗!”
상대방은 아무래도 당황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게, 정말 갑작스러운 만남이었으니까. 게다가 첫 만남부터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나버렸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몰라도, 사냥해야 할 몬스터를 그대로 가로채버렸으니까. 쉽게 말해 막타를 빼앗긴 셈이다.
“아… 으….”
일을 저질러버린 아이라는 어째서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은 서로가 경쟁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일도 충분히 일어날 법했다.
그렇다 보니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아이라는 오히려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죄송합니다!”
마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지금까지 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고, 그 몬스터를 뺏겨 점수를 벌지 못했으니 내가 화를 낼 법한 상황이긴 하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먼저 저런 자세로 나오니 막상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소문으로 듣던 그 우승 후보가 정말 맞긴 한 걸까? 눈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저 순수한 소녀의 모습일 뿐인데.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짧은 고민을 하다 이내 결론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몬스터를 한번 빼앗긴 것 정도로는 점수에 큰 지장이 없었고, 적어도 예선 정도는 이런 일이 있어도 충분히 통과할 만했다. 그러니 우선은 계속해서 낮은 자세로 나오는 그녀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그렇지만….”
하지만 여전히 아이라는 내 말을 들었음에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면서 살짝 떨고 있는 모습은 무릇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할 정도.
분명 우승 후보라면 자만하거나, 자신의 실력에 취해있을 법도 한데, 이런 반응은 꽤 신선했다.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인걸요.”
몬스터는 다시 잡으면 되는 거니까. 오히려 여기서 우승 후보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보단 지금처럼 깔끔하게 이 일을 넘기는 게 더 나았다.
실제로 그녀의 마법은 상당히 파괴적이었다. 내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른 공격, 그것도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적을 쓰러트렸으니 말 다했다.
“그렇다면 저는 다른 몬스터를 잡으러….”
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자리를 뜨고자 했다. 여기서 괜한 문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다른 몬스터를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았으니.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단 혼자서 움직이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발을 빼려고 했는데, 오히려 아이라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선 외쳤다.
“잠시 멈춰주세요!”
어라.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한마디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소 당황해하는 사이,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이번 일을 끝내기엔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요. 제가 실수한 거니, 그 부분만큼은 해결하고 싶어요.”
보통 우승 후보급쯤 되는 실력이라면 이런 일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던 아이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상당한 수준의 실력에 올곧은 성품까지, 괜히 인기가 많은 게 아닌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답해줘야 할까. 그녀에게 원하는 거라고 해봤자 그리 많지 않았다. 초면이기도 했고 그전까지는 크게 얽히고 싶지도 않았으니.
하지만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잠깐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다음 사냥까지 같이 다니는 건 어떤가요?”
“…네?”
아이라는 내 부탁에 다소 얼이 빠진 것처럼 답하긴 했지만,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점수를 잃은 것에 대해 정 보답을 원하신다면 제가 몬스터를 잡는 걸 도와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경쟁 상대인데….”
“방송에서는 뭐든 상관없다고 했으니, 팀을 맺는 것도 생존 방법의 하나죠.”
적으로 만나는 게 두렵다면, 아군으로 만든다. 원래라면 이런 개인전에서 팀을 맺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부분인데.
물론 일시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적으로 남겨두는 것보다는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두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아이라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 건지 상당히 빠르게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불안감이 풀린 듯 표정도 헤실헤실해졌다.
우승 후보라기엔 어딘가 위압감이 없는 그 표정에, 나는 정말로 그녀가 경계해야 할 상대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몬스터를 찾아보죠.”
그렇게 나와 아이라는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던전의 어두운 통로를 지나쳐갈수록, 주위의 풍경도 그에 따라 조금씩 변해갔다.
벽에는 이끼가 자라있었고, 곳곳에 오래된 돌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던전이 꽤 오래되었음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
적막하기 그지없는 곳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그야…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이번에 거의 처음 보는 낯선 여자와 함께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대로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있는 것도 그래서, 나는 그냥 지금껏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저희….”
“네?”
화들짝 놀라는 아이라에게 나는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저희 통성명도 안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할까요?”
“아, 네! 그렇죠!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아이라는 내 말을 듣고선 다소 묘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선 자세를 가다듬고서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던전 탐험가로서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호시미야 아이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라의 모습은 상당히 기품있게 느껴졌다. 어딘가 모를 강인함이 느껴질 정도로 인상 깊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격식을 차리게 되었다.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고선 서로 간의 통성명을 할 수 있었고, 아이라는 다시 원래 태도로 돌아왔다.
“그러면 다시 몬스터를 찾아보죠. 그래야 약속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아이라가 다시금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나는 그 뒤를 따라나서기로 했다.
분명히 주변 풍경은 여전히 어둡고 삭막했지만, 이전과 다르게 옆에 사람이 있으니 그런 기분은 좀 덜했다. 전보다 분위기도 풀린 느낌이고.
그렇게 아이라와 나란히 걸을 무렵,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어딘가 화려한 그녀의 복장에 눈길이 갔다. 던전 탐험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지금 입고 있는 그 복장…."
“네?”
“전투용 옷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입고 있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 말마따나 그녀의 복장은 전투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아 보였다. 얇은 천으로 이뤄진 푸른 톤의 원피스, 거기에 치맛단에는 프릴이 달려 있었다. 전투복이라기보단 예복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해 보였다.
“이렇게 보여도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가 달려 있어요. 그리고 나름대로 이 옷을 입게 된 사연도 있달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라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선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러면 던전 탐험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그걸 말하려면 옛날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나와 아이라는 사소한 잡담을 나누면서 점점 더 던전 깊은 곳으로 향했다. 비록 같은 대회 참가자지만, 이렇게 동맹을 맺은 이상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로 여전한 경계심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떨쳤다.
그렇게 둘이서 던전을 걷는 게 익숙해질 무렵, 거친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우우-
방금 들려온 그 소리는 던전을 조금이라도 탐험해본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울림이었나.
“방금은….”
“늑대네요.”
“그것도 여럿.”
그리고 그 진원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아이라와 대화를 나누던 걸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때가 된 것 같네요.”
내가 낮게 읆조렸다. 몬스터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은 탓에 점수를 얻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나와주다니. 나름 행운이었다.
“아이라 씨는 후방에서 지원해주세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늑대 정도는 혼자서 쓰러트릴 수도 있지만, 도움받는다고 나쁠 건 없으니.
내 점수는 여전히 없다시피 한 상황. 몬스터가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추측하기 어려웠기에 이번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빼내고서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모서리 벽에 붙어 상황을 파악했다. 눈앞에 보이는 늑대는 총 2마리. 협공당하지만 않는다면 손쉽게 문제 해결할 수 있어 보였다.
기척을 죽인 채 때를 노렸다. 그 사이 늑대들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 채 천천히 곁으로 다가왔다. 벽에 몸을 기댄 채 가장 정확한 순간을 노리는 게 중요했다. 첫 공격이 빗나가는 순간 벌어질 일이 눈에 선했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늑대가 마침내 사정권에 들어섰다. 그 뒤로는 늑대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때는 내가 이미 앞으로 나온 뒤였다.
짧은 도움닫기 이후 빠른 찌르기, 내 속공은 그대로 늑대 한 마리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아우우!”
“일단 하나!”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다른 늑대와 내가 눈이 마주치자, 나는 빠르게 꽂았던 검을 사체로부터 뽑아냈다. 붉은 피가 검을 타고 흐르는 게 선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보기엔 좋지 않은 비위였지만 생존 앞에서는 이야기가 다른 법이다. 나는 숨돌릴 틈도 없이 두 번째 늑대와 대립하게 되었다.
자기 동료가 쓰러진 걸 알아챈 또 다른 늑대는 바로 내게 달려들지 않았다. 빈틈을 노리겠다는 듯 빠르게 눈을 굴려 상대방을 탐색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찰나와도 같은 대립은 순식간에 끝났다. 적당히 견적을 내고선 그대로 늑대에게 달려든다. 그와 동시에, 늑대 쪽에서도 내게 달려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검이 휘둘러진다. 검격이 늑대의 몸통을 가르기 위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른 궤적을 만들어냈다. 그 무렵, 늑대의 발톱 또한 나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서로서로 스쳐 지나가고서 남은 것은 늑대의 단말마. 다행스럽게도 내 공격이 조금 더 빨랐다. 덕분에 늑대의 공격은 어깨를 살짝 내주는 선에서 잘 회피해냈다.
“후우.”
완벽하진 못해도 공격 한번으로 적을 쓰러트렸다. 나는 약간의 통증을 참고선, 늑대가 정말로 쓰러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조심해요!”
멀리서 아이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등 뒤가 섬뜩해져 주변을 확인했다.
당황스러웠다. 기척을 숨기고 있던 세 번째 늑대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설마 하던 기습을 당할 줄이야. 어떻게든 대처를 해보려 했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아니, 모자랐다고 생각했다.
늑대는 분명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내게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금 전투 자세를 잡으면서도 쟤가 왜 저러나 확인했는데, 늑대의 다리가 꽁꽁 얼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설마 하며 아이라쪽을 확인해보니,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선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 참….”
혼자서 해결해보려 했던 내 의지가 무색하게 아이라의 도움을 받아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끝을 봐야겠지.
나는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늑대의 미간에 꽂아버렸다. 고정된 표적만큼 찌르기 쉬운 건 없는 법.
케르륵...
늑대는 일격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급소가 꿰뚫린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늑대가 죽은 걸 확인하고는 바로 검을 뽑아냈다.
“괜찮아요?”
그 무렵 뒤에 있던 아이라가 내 앞까지 한달음에 다가왔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 피해를 볼 뻔했던 터라 바로 감사 인사를 했다.
“덕분에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다행이에요….”
아이라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했다. 방금 일은 부주의했던 내 잘못이 컸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최악의 경우엔 내가 예선 탈락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다친 부분은 괜찮아요?”
“아. 이거요?”
그렇게 생각할 무렵 아이라의 시선은 내 어깨 쪽에 가 있었다. 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살짝 부어오른 모습, 통증이 있긴 했지만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다.
“별로 안 아파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지만, 또 점수를 뺏을까 봐 살짝 망설였던 게 그만….”
아이라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두 번째 늑대와 대치할 무렵에도 도움을 주려 했던 모양이다. 도움이 있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진 몰라도 원망할 생각은 없는데.
내 상태가 괜찮았음에도 오히려 그녀가 자신을 자책하며 죄책감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대회에 남아있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괜찮아요. 이번 점수는 온전히 제가 받았는걸요? 그리고 마지막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다쳤을 거예요.”
말 그대로 아이라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냥을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게 바로 대회니까.”
“…그렇죠.”
괜한 죄책감을 부르는 듯한 그녀의 태도. 여전히 마음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도 전보다는 분위기가 괜찮아졌다.
“그럼 약속도 여기서 끝이네요.”
그 말대로, 함께 다니는 건 이번 사냥까지였다. 몬스터를 잡아 얻을 수 있는 점수를 단 한명만이 얻을 수 있는 이상, 함께 다니는 건 그리 효율이 좋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가요. 음….”
아이라도 내심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다소 아쉬운 투로 말을 건넸다. 그리고선 그녀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녀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아이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혹시, 이번 라운드가 끝나기 전까지만 좀 더 같이 다니는 건 어때요?”